광야에서 본 가나안
신명기가 기록된 곳은 모압평지가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이다. 그곳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면,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나안의 동편이 광야이기에 이스라엘이 차지한 길르앗과 골란보다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서는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동안 걸었던 광야보다 가나안이 상대적으로 더 기름지다는 의미일 수 있다. 요단 동편에서 볼 때 가나안은 서쪽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풍으로 이슬을 공급받는다. 이슬은 밤마다 땅을 촉촉이 적시며, 겨울에는 농사를, 여름에는 목축할 땅으로 만든다. 겨울, 우기에 지중해 구름이 가나안산지에 부딪혀 내리는 비는 서쪽으로 흐르면서 숲을 만들어 계단식 농법을 사용한 풍요로운 농사를 짓게 한다. 동쪽으로 흩뿌리고 지나가는 비는 유다광야에 초지를 형성해 겨울에는 푸른 풀을 공급하고, 여름에는 건초로 목축을 하게 한다.

목축과 과일 농사에 적합한 땅
젖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가나안이 목축에 적합한 땅이라는 의미다. 한국은 가나안보다 초지가 많아도 습한 날씨 때문에 목축이 적합하지 않다. 가나안은 많은 양떼를 키울 수는 없지만 건조한 날씨에 적당한 수의 양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젖을 얻을 수 있는 적절한 땅인 셈이다.
또한 꿀이 흐르는 땅이란 골짜기에 숨은 샘 곁에서 자라는 과실수의 열매를 말한다. 가나안의 여름은 가혹할 정도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다. 그런데 겨울에 내린 물을 품는 석회암층이 여름에 샘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며(신 8:7), 과실수에 수분을 공급해 따가운 햇볕에 과일의 당도를 최고로 높인다. 신명기 8장에 나오는 7대 식물 중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이 과일이며, 꿀은 대추야자 열매인 다말(Tamar)을 의미한다고 본다(신 8:8).
이스라엘의 포도, 무화과, 대추야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즉, 농업적으로 봤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은 적당한 목축에 적합한 땅이요, 당도 높은 과일 농사에도 적합한 땅이다. 그래서인지 현대 이스라엘의 주력 산업도 농업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농업 외 기후나 주변 상황으로 바라보면 다른 해석이 나온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만 살 수 있는 땅이다. 왜냐하면 항시 흐르는 요단강이 있지만 낮은 곳에 있어 사용할 수가 없고, 농사를 지으려면 비가 내려야 한다. 서쪽으로는 베니게와 블레셋, 동쪽으로는 아람, 암몬, 모압, 에돔, 심지어 광야의 미디안과 아말렉이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노리고, 추수기만 되면 침략해 왔다.
또한 거대 문명이 위치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가 이집트로 가려고 쳐들어왔고, 이집트도 북진 정책을 쓸 때는 가나안을 교두보로 삼았다. 전쟁이 많고, 사망의 그늘진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려면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말씀에 순종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기근과 강대국의 포로가 됐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